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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사 인터뷰 후기

by 수어언니 2026. 3. 7.

얼마 전, 월간지 '좋은생각'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어통역사로서의 삶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제안이었죠.

처음엔 "내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에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어로 세상을 연결하는 저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창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응했습니다.

막상 정리된 글을 보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에 수어통역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제 목소리로 더 자세히 들려드리고 싶어졌습니다.

나중에 글로 정리된 인터뷰를 읽어보니

조금 낯설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

그래서 오늘은 그 인터뷰 내용을

조금 더 제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월간지에 인터뷰하는 내 모습


수어통역사는 대변인이 아닙니다

수어통역사로 일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농인을 대신해서 말해주는 분이죠?"

"좋은 일 하시네요, 봉사하시나 봐요."

이럴 때마다 저는 잠깐 설명을 합니다.

수어통역사는 농인의 대변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도 아닙니다.

저는 누군가의 생각을 대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언어 전문가입니다.

비장애인의 음성을 한국수어로 전달하고,

농인의 수어를 음성 언어로 전달합니다.

그 과정에서 통역사는 항상 중립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대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농인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요.


통역사가 있어도, 농인을 직접 바라봐 주세요

인터뷰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통역사가 옆에 서 있더라도

대화를 할 때는 통역사가 아니라 농인을 직접 바라봐 주세요.

많은 분들이 저를 보면서 말을 합니다.

"오늘 날씨 좋죠?"

그런데 그 말은 저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 말을 그대로 수어로 전달할 뿐입니다.

대화의 당사자는 농인입니다.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읽고,

직접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그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일 뿐입니다.


의회 통역, 그리고 팔의 현실

수어통역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의회 통역은 1시간, 길면 2시간 가까이 거의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팔은 계속 올라가 있어야 하고,

표정도 유지해야 하고,

집중력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통역이 끝나고 나면 어깨가 뻐근하고 팔이 얼얼해집니다.

한 번은 스마트워치를 차고 의회 통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통역을 마치고 보니

알림이 하나 떠 있더라고요.

"오늘의 목표 걸음 수를 달성하셨습니다."

저는 그날 한 발자국도 걷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마트워치가

제가 수어를 하면서 움직인 팔 동작을

'걷기'로 인식한 겁니다.

그날 만 보를 채웠습니다.

걸은 적은 없지만

팔은 정말 많이 움직였죠.

혼자 웃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건 걷기 운동이 아니라

팔 운동인데…" 하고요.

마무리하며

수어통역사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언어를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투명해지고,

가끔은 몸이 먼저 지치고,

그래도 누군가의 말이 정확히 전달되는 순간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통역사가

소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를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중심은

항상 당사자에게 있다는 것.

혹시 다음에 수어통역사를 보게 된다면,

통역사를 향해 말하기보다

농인을 바라봐 주세요.

그 작은 시선 하나가

소통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리고 혹시 통역사가 팔을 슬쩍 주무르고 있다면,

그날은 아마 만 보를 이미 채운 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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